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트남 전쟁/한국군 (문단 편집) === 베트남전 발발 당시의 평가 === 베트남 전쟁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첫째는 자주적인 통일 국가를 이루려는 베트남 민족과 외세(프랑스, 미국 등)의 대결로 보는 구도로, [[베트남 민주 공화국|북베트남]]과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대한민국의 좌파 인사들'이 제기한 관점이다. 애초에 베트남 전쟁은 프랑스가 변화된 국제정세를 무시하고 베트남을 계속 식민지로 유지하려다가 시작된 것이고, 남베트남은 사실상 프랑스가 만든 괴뢰국가에 불과하였다. 더구나 프랑스가 [[디엔비엔푸 전투]]의 패배로 베트남을 포기하고 떠난 뒤 남북 간에 합의된 '''1956년 남북통일총선거'''를 남베트남 정권이 차일피일 거부한다. '''UN이 주최한 총선거를 남베트남이 거부했기때문에 유엔의 개입 명분이 없어졌고 결국 베트남전쟁에선 [[유엔군사령부|유엔군]]을 파병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베트남의 입지가 매우 약화된 상태였다. 따라서 이 관점에 따르면 베트남 전쟁은 통일국가 수립을 위한 [[내전]]이며, 미국의 개입은 당연히 명분이 없다. 베트남처럼 식민지였다가 2차대전 이후 독립한 수많은 [[제3세계]] 신생국들은 당연히 여기에 호응하였다. 2차대전 이후 식민지들을 포기한 서유럽 국가들에도 이런 관점에 동조하는 정치세력들이 상당수 존재하였다. 때문에 UN의 승인과 대다수 서유럽 국가들이 미국을 따라 참전한 한국전쟁과는 달리 미국은 베트남전에는 자신들의 서유럽 동맹국들을 참전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둘째는 '''공산 북베트남'''과 '''자유 남베트남'''의 대결로 보는 것으로, 당연히 남베트남과 미국, 프랑스, '대한민국의 우파 인사들'이 강력하게 제기한 관점이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미국은 [[반공]]을 외치면서 전 세계 각지에서 [[공산주의]]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다면 [[매카시즘|무조건 적대시]] 하였다.이 때문에 프랑스가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참패하고 베트남을 포기하자, 미국은 [[도미노 이론]]을 내세워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북베트남은 같은 민족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침략국이고, 미국의 개입은 자유 진영을 수호하고 아시아 공산화를 막기 위한 정당한 행동이다. 실제 베트남 전역이 북베트남으로 통일된 이후, 인접국인 [[라오스]]와 [[캄보디아]]도 공산화되었기에 도미노 이론이 맞아 떨어졌다는 견해도 있다. 물론 미국의 개입에 대해 잘못된 방향으로 도미노 현상을 부채질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